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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손. 박. 미혜
명철이2
2023. 11. 19. 13:03
닫혀있는 창 너머로, 멀리
정오의 햇빛 뒤는 운동장이 보인다.
검게 그슬린 한 패거리의
아이들이 운동장을 돌면서 흰
횟가루를 뿌린다. 그리움의
암울한 주파수를 외계로
막막히 흘려 보내며, 내 왼쪽 손은
탁자 위에 차갑게 놓여 있다.
검정색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아이들이 깨끔한 발뛰기를 시작한다.
하오의 무료한 살갗을
팽팽히 일으키며, 한 아이는
숨어서 놀이 규칙 몇 개를
은밀하게 조작하고. 여기까지만, 이
금을 넘어서면 죽는 거야.
뒤를 돌아보는 법도 없이 아이들은
정밀하게 금 안을 맴돈다.
글쎄 요즘엔 너무 바빠서요, 수화기를 끊고
전화기의 차가운 가슴을 지나
자신의 가슴 쪽으로
외롭게 되돌아오는 모든 지구인의
심심한 창, 내가 기다리는 건
전화가 아니다. 사랑 같은 것,
외계로부터 전해 오는 감수성의
주파수 또는 기적 같은 해답.
어둠이 쌓이고 운동장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암담한
어둠의 밑바닥에서 누가 따스히
내 손을 잡는다. 바람인가, 은사시나무 가지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달빛처럼
짧게 흔들린다. 사랑인가, 나를 찾아
우주의 캄캄한 궁창에 온몸을
찢기며, 이곳에 누가 왔나.
그가 내 손을 잡고 흔든다. 그래
이젠 일으키리. 서로 떨어진 채
마주해 있던 수억의 황폐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 내 뜨거운 혈관 속으로
버림받고 허물어진 무엇이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