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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타운. 하. 종오

명철이2 2024. 1. 5. 15:58



   자투리땅에 고추모종을 내는 상노인

   한 주를 심을 때마다 가을까지

   태양초 세 근씩 거둬 자식에게 줄 계산했다

   도시개발구역으로 수용된 야산에 세워진

   아파트의 그늘이 옮겨가기 전에 일 마친 상노인

   삽과 호미를 검정비닐로 싸서 고랑에 숨겨두고

   아파트 15층 집으로 올라가 베란다에 나앉았다

   네거리는 상추밭이 있던 곳

   모텔은 아욱밭이 있던 곳

   오피스텔은 파밭이 있던 곳

   눈으로 한 자리 한 자리 짚어보는 상노인

   왜 신시가지가 들어서서 부자 되게 해주었는지

   가리사니가 서진 않아도

   대학공부 제대로 시킨 자식에게

   논밭뙤기로 물려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고개 끄덕였다

   높은 데서 살면서 땅을 내려다보게 될 거라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노인

   고추농사를 소일거리로 지을 수 있는 자투리땅이

   저어기 아래에 남아 있으니, 말년이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