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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차. 박. 팔양

명철이2 2021. 9. 7. 17:36


추방되는 백성의 고달픈 백(魄)을 실고

밤차는 헐레벌덕어리며 달어난다

도망군이 짐싸가지고 솔밭길을 빠지듯

야반(夜半) 국경의 들길을 달리는 이 괴물이여!



차창밖 하늘은 내 답답한 마음을 닮었느냐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 몹시도 캄캄하고나

유랑(流浪)의 짐 우에 고개 비스듬히 눕히고 생각한다

오오 고향의 아름답든 꿈이 어디로 갔느냐



비닭이집 비닭이장같이 오붓하든 내 동리

그것은 지금 무엇이 되었는가

차바퀴 소리 해조(諧調)마치 들리는 중에

희미하게 벌려지는 괴로운 꿈자리여!



북방 고원의 밤바람이 차창을 흔든다

(사람들은 모다 피곤히 잠들었는데)

이 적막한 방문자여! 문 두드리지 마라

의지할 곳 없는 우리의 마음은 지금 울고 있다



그러나 기관차는 야음(夜音)을 뚫고 나가면서

‘돌진! 돌진! 돌진!’ 소리를 질른다

아아 털끝만치라도 의롭게 할 일 있느냐

아까울 것 없는 이 한 목숨 바칠 데가 있느냐



피로한 백성의 몸 우에

무겁게 나려 덥힌 이 지리한 밤아

언제나 새이랴나 언제나 걷히랴나

아아 언제나 이 괴로움에서 깨워 일으키랴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