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가사. 조. 벽암
명철이2
2021. 11. 13. 17:01
어느 때는 금점판
어느 때는 절ㅅ간
어느 때는 일터로
어느 때는 감옥
두루두루
돌아다닌다는 소문
집안은 나날이 파뿌리같이 문드러져
일가붙이 하나 돌보지 않고
어메는 적수공권
어느 때는 바느질품
어느 때는 바비아치
어느 때는 박물장사
두루두루 천덕구니
소박데기라 비웃는 소리
못생겼다 꾀이는 소리
그러나 청실홍실 늘인
붉은 밀초 녹아내리는 밤
세 명주 이불 내음새가
아련히 풍기던 밤
정이 든듯 만듯
한사코,
그 방을 지켜온 마음
철없을 적에
얻는 듯
열적게 낳은
도토리 같은 남매
기어이 길러놀 결심
어느 때는 아베를 원망도 했고
어느 때는 아베를 그리기도 했고
어느 때는 아베를 도리어 고맙게도 여기고
길가 조약돌 모양
제멋대로 뒹굴며 커가는
어느 날 저녁
입은 채로 누워 자는
아들과 딸의 볼 위에
넌지시 얹는 어메의 입가엔
오래 잊었던 웃음이 솟다간
불현 듯 솟구쳐
창 모슬에 걸친 달빛 붙들고
곰곰이 떠오르는 생각
접동새는 왜 그리 구슬피 울고 가는가
눈시울은 시룩시룩
혼자 서러웠다
이렇도록
무럭무럭 커가는 딸 아들
탐탁하기 그지없어
아베는 영영
잊어버려도 살 것만 같았던 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아들을 징병으로
딸은 징용으로
뻔질뻔질 놀고만 있는
면장집 딸과
술도가집 아들은
고스란히 그대로 두고
고생살이에 쪼들려 큰
어메의 불쌍한 아들은
붙들려 가
남(南)으로 갔다기도 하고
북(北)으로 갔다기도 하고
천덕구리로 큰
어메의 가여운 딸은
끌리어 가
서울로 갔다기도 하고
만주(滿洲)로 갔다기도 하고
아 - 이 어찌된 셈인지 몰라
어메는 미친 듯 울었고
어메는 죽을 듯 몸부림치고
그러나 결코 죽지 않으려니 하는 신념과
꼭 살아 돌아오려니 하는 기다림과
어메는 온밤을 고스란히 새며
정화수 떠놓고
초ㅅ불 켜 놓고
합장재배
비옵는 축원
여름이라 한가위
팔월에도 보름날
어메는 영문도 모르고
좋다 말아 울었소
덩달아 손들어 만세를 불렀소
이런 소문 저런 소문이
홍수모양 사뭇 밀려오던 며칠 후
딸은 하이얀 얼굴로 돌아왔고
또 며칠이 지난 후
아들은 우리 군대에 있다는 소문
또 며칠 후에는
아베는 연해주(沿海州)에 있다는 소문
어메는 꿈인가 했소
어메는 생시인가 했소
어디서 막혔다 쏟아지는지
뜨거운 눈물이 연시 흐르고
어디에 갇혔다 나오는지
웃음은 주책도 없이 자꾸 웃겨지고
웃으며 울으며
울으며 웃으며
어메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소
이제껏 싫어했던 사람이 친절한 척하고
이제껏 무시하던 구장이 다 찾아오고
이제껏 푸대접하던 일가가 알은 척 하고
그러나 새삼스레 칭송하고
어연 듯이 위해주는 것도 물리치고
맑은 창공을
우두커니 쳐다보는
어메의 눈동자는 별같이 반짝였소
아베가 돌아올 때까지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땟국 묻은 행주치마 바람으로 기다렸다가는
눈에는 한껏 더운 눈물을 짓고
입에는 한껏 웃음을 띠고
천연듯이 맞으려 했소
오늘이라 섣달그믐께
정화수 떠 놓고
초ㅅ불 켜 놓고
합장재배
아베와 아들을 축원하는 가는 목소리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