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기우는꽃. 김. 기덕
명철이2
2022. 10. 24. 17:27
발을 내딛는 길마다 방사선의 금이 갔다
한 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검은 빙판 위에서
꽃보다 먼저 꺾인 관절이
소리 없는 날개로 퍼덕거렸지
바람에 풀잎들이 머리칼로 휘날릴 때
눈빛만으로도 피어나는 꽃이 있었지
은행 한 잎의 미소에도 중심을 잃고 꽃잎은 이슬을 쏟아놓았어
어둠에 젖은 나뭇가지 사이로 별들이 커질수록
붉은 날개는 한 뼘씩 길어졌지
바람을 먹은 빙판이 억새꽃 뿌리를 드러내고
시계추처럼 흔들릴 때도
바위를 등에 지고 천년을 기다려준 산이 있었어
민들레 꽃씨, 깃털의 불꽃을 품고
바람 속으로 기울어져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