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나무 그늘을 빠져나온 길은
황토 산비탈로 자지러진다
차돌처럼 희고 단단한 고요
오직 고요의 남쪽만 방석만큼 비어 있다
길은 또 한번 황토 산비탈로 자지러진다
온몸에 고추장을 뒤집어쓴 어떤 애잔함이, 출렁
섬진강 옆구리를 스치는 듯도 하였다
고요의 남쪽은 이상향이다. 상상의 한 공간이다. 번잡함을 멀찍이 밀쳐놓을 수 있는 ‘차돌처럼 희고 단단한 고요’가 팽창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그리 크지 않다. 방석만큼 비어 있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 방석만큼 비어 있는 고요의 남쪽을 온전히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낮은 어조로 표출되고 있다.
떡갈나무 그늘을 빠져 나온 길이 두 번씩이나 황토 산비탈로 자지러진다. 그런 소요 이후에 애잔함이 섬진강 옆구리를 출렁 스친다고 진술하고 있다. 온몸에 고추장을 뒤집어 쓴 어떤 애잔함이다. 이 난데 없는 비유가 뜻밖의 강한 울림을 일으키며, 고요의 남쪽은 웅숭깊어진다.
혼자 떠나는 먼 길에 맞닥뜨리게 될 고요의 남쪽은 차돌의 희고 단단함으로 잘 여물어 있을 것이다. 방석만한 그 공간은 좁다란 대로 안식과 더불어 혼자만의 사유를 꿈꿀 수 있는 곳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