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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을 차고 김 영랑

명철이2 2021. 4. 2. 16:29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디!'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디!',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