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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아래서 우산을쓰고. 원. 재훈

명철이2 2022. 10. 1. 17:26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다보면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 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 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의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