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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는 안중근 의사. 김. 정호

명철이2 2024. 2. 28. 18:34


은행잎들이 노란 눈꽃으로 흩날리며

가을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

햇살이 시퍼런 칼날을 세우는

안중근 의사 청기와 기념관



사내는 지난밤도

기념관 처마 밑에서 칼잠을 잤다

신용불량자 같은 종이 박스를 깔고



사내의 허기진 눈엔

활모양 등이 휜 어제가 누워있고

집 찾아 메뚜기처럼 쫓겨 다닐

봇짐 같은 오늘이 마른 눈물로 굳어 있다

상처받은 영혼은 이리저리 낙엽 따라

정처 없이 흩날리는데……



1909년 10월 26일 아침,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했다



2004년 10월 26일 아침,

사내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처마 밑에서

유신의 심장을 쏜 사람처럼

서울의 가을을 저격했다



사내의 시퍼런 절규가 하늘을

탕! 탕! 탕! 울리자,

날개를 꺾은 가을이

사내의 발 앞으로 눈물을 떨군다



동상 좌대에서 내려온

안중근 의사,

남산광장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태극기를 휘감은 어깨 위에

햇살이 내리꽂히고 있다



흰 비둘기 푸드득 날아오르자,

살 비늘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