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31

지금 이렇게. 정. 우경

보냅니다 보내드립니다 지금 이렇게 그대를 보내는 것이 내게 있어 진정한 소유이기에 잊습니다 잊어버립니다 지금 이렇게 그대를 잊는 것이 내게 있어 진정한 그리움이기에 남이 됩니다 남이 되어버립니다 지금 이렇게 그대와 남이 되는 것이 내게 있어 진정한 하나이기에 세상에 뻔한 이치가 때론 들어맞지 않아 행복일 수 있었던 날들 보내고 잊고 남남이 되는 이치 보내고 잊고 남남이 되는 이치 남습니다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이 내게 있어 진정한 떠남이기에.

카테고리 없음 2022.12.31

백합. 곽. 재구

당신이 고통으로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당신이 주체할 수 없는 정신의 방황으로 아름다운 긴 머리칼마저 흐트러뜨릴 때 내 마음의 뜨거운 골짜기에서 진실로 순결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어느 날 당신은 나를 떠나겠지요 내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찬란한 바다 모든 파도가 슬픔으로 술렁이는 그날도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2.12.30

때론 사랑이라는것은. 정. 우경

어느 날 나의 조카는 내게 말했다 난 짝꿍이 좋아서 사탕 한 개도 쪼개서 줬는데 성운이는 아무것도 안 주었다고 얘야, 사랑하는 나의 조카야 사랑은 산수처럼 계산하는 게 아니란다 때론 손해보는 것 나머지 사탕 반쪽도 마저 주고 싶은 것 그게 바로 사랑이란다 어느 날 나의 동생은 내게 말했다 우리반 어느 아이는 노래를 잘 불러서 좋아진다고 얘야, 사랑하는 나의 동생아 사랑은 음악처럼 박자가 들어맞는 가락이 아니란다 때론 4분의 3박자가 4박자가 되는 것 음치인 목소리가 더 멋이 있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란다 어느 날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사랑이란 정말 무엇이냐고 얘야, 사랑하는 나의 동생아 사랑은 국어처럼 문법이 맞는 문장이 아니란다 때론 아무 말도 없는 것 그러고도 서로를 알아주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란다..

카테고리 없음 2022.12.29

그대는 나의 전부 입니다.p. 네루다

당신은 해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빛과 모양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입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생명 속에는 나의 꿈이 살아 있습니다.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꿈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에 물든 내 영혼의 빛은 그대의 발 밑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오, 내 황혼의 노래를 거두는 사람이여, 내 외로운 꿈속 깊이 사무쳐 있는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석양이 지는 저녁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영혼은 그대의 슬픈 눈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대의 슬픈 눈빛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2.12.28

계단. 곽. 재구

강변에서 내가 사는 작은 오막살이집까지 이르는 숲길 사이에 어느 하루 마음먹고 나무계단 하나 만들었습니다 밟으면 삐걱이는 나무 울음소리가 산뻐꾸기 울음 소리보다 듣기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이 계단을 밟고 내 오막살이집을 찾을 때 있겠지요 설령 그때 내게 나를 열렬히 사랑했던 신(神)이 찾아와 자, 이게 네가 그 동안 목마르게 찾았던 그 물건이야 하며 막 봇짐을 푸는 순간이라 해도 난 당신이 내 나무계단을 밟는 소리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신(神)과는 상관없이 강변 숲길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2.12.27

그대 어디로 가는가. 백 창우

어디로 가는가 바람을 거슬러 그대, 어디로 가는가 무얼 찾아가는가 어둠을 거슬러 그대, 무얼 찾아가는가 추운 도시의 한복판에서 더운 불 하나 피우고 싶어하던 그대,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찾아가는가 두드려도 소리나지 않는 북처럼 그대 입술은 열리지 않고 그 안타까운 침묵 속에 밤은 깊어가는데 어디로 가는가 그대, 무엇을 찾아가는가 2 햇살이 오는 곳, 아침이 열리는 곳 지친 가슴으로 그대 닿을 곳 거긴가 별이 오는 곳, 빛이 시작되는 곳 고단한 가슴으로 그대 닿을 곳 거긴가 인간의 세상 그 어디에 고운 꿈 하나 묻어두고 그대, 닿을 곳 거긴가 인간의 세상 그 어디에 고운 꿈 하나 묻어두고 그대,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찾아가는가 어느 슬픈 이의 노래처럼 그대 눈빛은 쓸쓸하고 그 산 같은 고독 위로 밤이 내려..

카테고리 없음 2022.12.26

바람부는 날엔 벚나무 아래서면. 정. 우경

바람부는 날에 벚나무 아래 서면 꽃비가 내린다 소망으로 부풀었던 꽃잎들이 포르르포르르 비로 내린다 오랫동안 꿈꾸던 설레임이 서툰 바람으로 밀려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러나 또다시 꽃비의 이름을 달고...... 바람이 불어오는 날에 벚나무 아래에 서면 벚꽃비가 내린다 내 그리움도 따라 내린다 내 그리움도 묻어 내린다 꽃비가 내리는 바람부는 날에......

카테고리 없음 202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