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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갯날. 이. 면우

​운전기사 뒷머리 면도자국 파르스름하다그는 파란불 켜진 건널목 세 개를 연달아 통과했다.​생의 어떤 날은 구름 한점 없는 하늘 펼쳐지기도 한다,고나는 말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휴일 외곽도로에서텅 빈 버스의 굉장한 속도에 잠시 어리둥절해졌다공기 가득 음악 품은 듯 서늘히 저항하는 오전지금 이 행운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님을 그러나아주 잠깐 새 깨닫도록 된 나이인 것이다​그렇다 핸들 쥔 저 장갑의 시리도록 흰빛은 이윽고땅에 떨어진 목련꽃잎처럼 누렇게 바랠 것이다그러나 지금 하늘의 보상처럼 햇빛 공기 속도가핏속에 녹아드는 중인 청년에게 나는 소리없이띄엄띄엄, 생각나는 대로 말을 건넨다​행운을 꽉 움켜쥐려 하지 말고가볍게, 계속 끌고 가라고바로 지금처럼.

카테고리 없음 2025.01.22

휘묻이. 이규성

외딴 사각슬레이트 지붕 아래 빛바랜 밀차 한 대물병, 약봉지, 수건, 앉을깨가 실렸습니다 풀밭에 자던 흰 고양이가 기지개를 켭니다낮잠이 건강에 좋을 수도 있군요사실 밤잠이 낮잠보다 맛있다는 보장은 없잖아요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좌표 하나가수면제 없이는 지도에 없답니다복약 시간 알람이 울고 요양보호사가 다녀간 후에야천천히 움직이는 극좌표 내일은 젖은 약속이 쏟아질 거라며오늘 접난 탯줄을 휘어 땅에 묻습니다슬픔은 왜 구부정해도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싶을까요 생장점마다 푸른 팔이 돋았으면 하는데어미를 딛고 눈을 뜨는 어린 모가지야생의 주어가 되려고참흙에서 천천히 밀어를 꺼내 먹을 때어떤 형용사로도 형용할 수 없는 새순이 피겠죠 피고 피고 피다가 물감을 누렇게 뒤집어쓰는 날아, 이제 편하구나 숨이라도 뱉으면끝내 꽃..

카테고리 없음 2025.01.21

월요일을 쓰다 강 신명

​ 비가 오래 내렸다 너는 월요일이면 비가 그칠 거라 했다 나는 구름의 일을 맞추는 것은 처음이 마지막의 안부를 묻는 것과 같다며 창문을 열지 않았다​ 기억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으나 우리는 불안을 걸러내며 흘렀다 폭우가 매번 월요일을 삼키듯이 쏟아졌다​ 틈새에 갇힌 습기가 벽을 만드는 동안 나는 너로 인해 달이 떴다고 웃었다 너는 나로 인해 해가 떴다고 울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월요일을 맞았다 달을 연민이라 쓰고 해를 신파라 읽어도 바람은 물속에서 자유로웠다 그때, 우리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침묵이 멈춘 배경으로 남아 물에 잠긴 징검다리를 무사히 건너는 일​ 우리는 시작이 보이는 끝과 끝으로 돌아섰다 누구도 길의 향방은 묻지 않았다​ 낮달이 너무 밝아..

카테고리 없음 202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