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혜순 병
그대가 답장을 보내왔다 아니다 그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나는 답장을 읽는다 病은 답장이다 (그대가 이 몸 속에 떨어져 한 번 더 살겠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뜨거운 실핏줄 줄기를 확, 뻗치는구나 견딘다는 게 病드는 거구나) 내 피부에 이끼가 돋는가 보다 가려움증이 또 도진다 내 사지에서 줄기가 뻗치는지 스멀스멀한다 온몸 위로 뜨거운 개미들이 쏘다닌다 그대가 또 시도때도없이 가지를 확 뻗친다 내 손가락이, 네게 닿고 싶은 내 손가락이 한정 없이 한정 없이 늘어난다 이 손가락 언제 다 접어서 옷소매 속에 감출까? 몸 속에는 너무 익어 이제는 터져버리는 일밖에 없을 홍시들 울 듯 말 듯 오늘밤 벌써 내 얼굴 밖으로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는 또 젖은 흙처럼 이부자리에 확 쏟아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