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까지 집 앞을 지나간 것은 자전거 한 대, 개 두 마리였다. 그리고 잠시 싸래기 눈이 왔다. 노을이 지는지 언덕에 나무 세 그루가 차례로 나타났다. 흰 측백나무, 흰 측백나무, 느티나무. 그리곤 저녁이 된 것이다. 전화가 왔다. 벨소리는 노을 속에서 흘러나온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노을 속으로 전화하는 것이 이렇게 멀다. 까마득하게 들리는 네 목소리에는 노을빛이 담겨 있다. 붉은 외등이 켜지는 동안 목소리가 사라진다. 꾸부정하게 서 있는 그림자를 핥으며 바람이 지나간다. 겨울이 다 가고서야 나는 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나는 왜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까. 사실 나는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내가 너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