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날 박 숙이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던 마트 아가씨가 쌩긋이 웃으며 고객님은 뵐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아져요 곁에 서 계시는데 이상한 힘이 막 생겨나요 동네에서 생필품을 사 안고 로또 맞은 기분으로 돌아오는 가을 저녁, 빵집 앞 쇼윈도에 나를 세워놓고 비춰본다 늦가을 볕살 같이 갈수록 뜨겁고 웃음이 헤픈 여자, 그래, 아직은 너 꽤 괜찮구나! 카테고리 없음 2020.11.10
마음을 빨아널다 구 경애 욕심과 교만으로 얼룩진 좁디좁은 소갈딱지 주름 깊은 빨래판에 벅벅 치대어 빨아 보면 묵은 때는 비누 거품에게 다 주어 버리고 하얀 마음만 깨끗하게 헹구어 말끔히 씻은 마음 훌훌 털어 말리면 눈부신 햇살 고운 이야기 펄럭이고 외로운 눈물은 하얗게 말라 산뜻한 하루가 된다. 카테고리 없음 2020.11.09
하늘에 쓰네 고 정희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곳,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 카테고리 없음 2020.11.09
갈대 신 경림 언제 부턴가 갈대는/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카테고리 없음 2020.11.07
개여울 김 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카테고리 없음 2020.11.06
젖지 않는 마음 나 희덕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 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려 가는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보면 발끝에 쟁쟁 깨지는 돌맹이 몇 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길 오로지 젖지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 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 가요 여기에 밤새 비내려 내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비에 젖었습니다 젖은 마음과 젖지않은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손 비비며 중얼거리는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카테고리 없음 2020.11.03
동지 ㅅ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카테고리 없음 2020.11.03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카테고리 없음 2020.11.03
현해탄 임화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그렇지만 우리 청년들은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섰다. 산불이 어린 사슴들을 거친 들로 내몰은 게다. 대마도를 지나면 한가닥 수평선 밖엔 티끌 한 점 안 보인다. 이곳에 태평양 바다 거센 물결과 남진(南進)해온 대륙의 북풍이 마주친다. 몬푸랑보다 더 높은 파도. 비와 바람과 안개와 구름과 번개와. 아세아(亞細亞)의 하늘엔 별빛마저 흐리고. 가끔 반도엔 붉은 신호등이 내어걸린다. 아무러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는가? 첫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쨋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 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 카테고리 없음 2020.11.01
선운사 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까닝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건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카테고리 없음 2020.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