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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12 신 달자

그곳은 지상이었을까 눈 덮인 겨울 강 위에 달빛이 누워 있었다 그대여 우리는 여기에 이르렀음을 티끌은 다 사라지고 맑은 영혼으로 이르는 신의 내해(內海) 달빛 물든 순백의 길을 따라가니 하느님이 다정히 시를 낭송해 주신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듬어간 천국의 문 진실로 사랑하는 연인은 하느님이 불러 서정시를 낭독해 주신다 지금까지 살아온 긴 그림자를 벗어 버리고

카테고리 없음 2020.09.11

시인은 모름지기 김 남주

시인은그따위 권위 앞에서 머리를 수그린다거나 허리를굽혀서는 안되는 것이 다 모름지기 시인이 다소곳 해야 할것은 삶인것이다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아귀 같은데서 늙은 상수리 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 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다 그것이 비록 도둑놈의 삶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패배한 전사 의 삶일지라도

카테고리 없음 2020.09.11

두드리는 기억의 창문

서 있는 바람의 얼굴을 보았지 내게 흐려진 아득한 인사 건네는 달빛을 보았지 조그만 창문에 기댄 세월의 목소리를 들었지 듣다가 잠든 세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지 스쳐 누군가의 마음에 비친 고요한 세월 건너온 피리 소리를 들었지 조그만 약속은 만들 수 없다는 기억의 발병에 시린 잎새의 나무들 울울창창한 모습에 무너지는 아픔의 징검다리 건너는 오늘을 보았지

카테고리 없음 2020.09.10

비 유안진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려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다보는 실루엣, 수목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카테고리 없음 2020.09.10

벽 가 영심

누군가 벽마다 무수히 박아온 못의 상처로 성한데 없는 내면의 구멍엔 공허한 바람소리만 깊었다 수시로 베어가던 욕망과 절망 사이 그것은 언제나 벽이 되어 있었다 안타까이 불러보던 마른 목소리 피 흘리지 않는 한숨 되어 갈대처럼 흔들렸다 세월의 칼날 무디어져 가고 한 줌 모래알의 고통도 허물어져가던 생의 마지막 희망의 끈 오, 벽이여 우리는 이제사 깨달았네 홀로 있는 시간 꿈의 맑은 창 열어놓고 아름다운 꽃들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이 생의 우리를 끝끝내 버티게 해 준 것이 바로 그대 견고한 사랑과 눈물이었음을.

카테고리 없음 2020.09.09

이제 가야만 한다 최승자

때론 낭만주의적 지진아의 고백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이제 가야만 한다 몹쓸 고통은 버려야만 한다. 한때는 한없는 고통의 가속도, 가속도의 취기에 실려 나 폭풍처럼 세상 끝을 헤매였지만 그러나 고통이라는 말을 이제 결코 발음하고 싶지 않다. 파악할 수 없는 이 세계위에서 나는 너무 오래 뒤뚱거리고만 있었다 목구멍과 숨구멍을 위해서는 동사(動詞)만으로 충분하고, 내 몸보다 그림자가 먼저 허덕일지라도 오냐 온 몸 온 정신으로 이 세상을 관통해보자 내가 더이상 나를 죽일 수 없을 때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는 곳에서 혹 내가 피어나리라.

카테고리 없음 2020.09.07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김 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

카테고리 없음 2020.09.07

장 길산 3 황석영

그 중에는 물론 맨 앞자리에 필준이 하인배들이 끼어앉아 있었다. 백석포에서보다 더 흐드러지고 오랜 판이 벌어졌는데 어두운 뒤에도 장작불을 키가 넘도록 두 무더기나 피워 놓고서 밥 때 까지 놓치는 정도로 성황 이었다 삼형제들은 나중에 아무래도 회수할 돈 인지라 기운깨나 쓴다는 자들만 골라서 해당화를 사도록 하였으며 달리 껴드는자가 있으면 협박하고 구슬려서 돌려보냈다. 영문을 모르는 고달근이는 거사들이 받아온 해우채로 들어온 돈닢을꿰미로 끼우고어물은 짚두름을 엮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허허 역시 봄장사는 갯가가 제일이라니까 젠장 보라 팰때까지는물가를 따라서 보령 수영을 돌아 강경까지 내칠까보다."거사 패거리는 노두 숙박비를 아끼느라고 석근이네 주막의 왼쪽끝의 목롯방애 모두 함께 들어 있었다 몇몇은 이리저리 ..

카테고리 없음 2020.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