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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박 재삼

빛 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자는 조약돌을 날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춰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카테고리 없음 2020.10.28

김 혜순 병

그대가 답장을 보내왔다 아니다 그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나는 답장을 읽는다 病은 답장이다 (그대가 이 몸 속에 떨어져 한 번 더 살겠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뜨거운 실핏줄 줄기를 확, 뻗치는구나 견딘다는 게 病드는 거구나) 내 피부에 이끼가 돋는가 보다 가려움증이 또 도진다 내 사지에서 줄기가 뻗치는지 스멀스멀한다 온몸 위로 뜨거운 개미들이 쏘다닌다 그대가 또 시도때도없이 가지를 확 뻗친다 내 손가락이, 네게 닿고 싶은 내 손가락이 한정 없이 한정 없이 늘어난다 이 손가락 언제 다 접어서 옷소매 속에 감출까? 몸 속에는 너무 익어 이제는 터져버리는 일밖에 없을 홍시들 울 듯 말 듯 오늘밤 벌써 내 얼굴 밖으로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는 또 젖은 흙처럼 이부자리에 확 쏟아져버린다

카테고리 없음 2020.10.18

장 길 산 황 석영

그무렵 반계는 수록을 칠년째 집필하고 있었는데 틈틈히 농사일을 돌보고 마을 사람들 에게만일의 일을 당하여 대비할수 있도록 활과 조총 쏘는법을 가르쳤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의 지리요새등을 기록한중흥위략을 쓰기도 하였다 ~제집에는 낮에도 인기척이 없으면 사슴이 울 않으려 찿아 들어오고 밤에는 거문고를 뜯기도 하는데 선조의 공음으로 이나마 독서에 풍류에 평안히 지냅니다 그마나 공밥먹는 버러지가 되지 말아야 겠는데......백성들이 땀흐려 일하는 동안 저는 책을 써야지요. 선비가 무었때문에 글을 읽는 자 인가 하는것이 희미해진 세상 입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0.10.16

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 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카테고리 없음 2020.10.14

가을들판 박 숙이

천둥 우레까지 熱戰의 가을까지 다 겪어봤다 무엇이 더 두려우랴 다만, 가을을 겪고 나니 요행이 없는 저 들판, 내가 한없이 넓어져 있음을 알겠다 생각해 보면 들판이 왜 들판이겠나 혼자 아닌 바람과 땡볕과 혹한과 함께 판을 벌인다는 말이지 언 땅속의 보리처럼 주먹은 추위 속에서 불끈 쥐는 것 해보자 까짓, 벌릴 틈만 있다면야 한가락 하는 저 추위도 나는 당찬 의욕으로 달게 받겠네

카테고리 없음 2020.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