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 31

기다림. 여러날후. 정. 우경

기다림, 여러 날 후 - 정우경 내 키가 전주만큼 길어지면 서로 사랑하자고...... 그때에 다시 온다고 했다 내 키가 해바라기만큼 길어지면 그때에 다시 만나자 했다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을까 전주만큼 그림자가 길어져서 그리움도 더욱 길어지고 해바라기만큼 키가 길어져서 기다림이 여문 씨앗처럼 쌓였는데 골목길 가로등 불빛의 그림자가 더 길어서일까 그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3.03.11

백치 애인. 신. 달자ㅣ

나에겐 백치 애인이 있다. 그 바보의 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를, 그리워하는지를 그는 모른다. 별 볼일 없이 우연히,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나게 될까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 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 찻집에서 찻집 문이 열릴 때마다 불길 같은 애수의 눈을 쏟고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길거리에서 백화점에서 또는 버스 속에서 시장에서, 행여 어떤 곳에도 네가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긴장된 얼굴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안타까움을 그는 모른다. 밤이면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며,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카테고리 없음 2023.03.08

꽃으로. 잎으로. 유. 안진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뭐니뭐니 해도 사랑은 아름답다고 돌아온 꽃들 낯 붉히며 소근소근 잎새들도 까닥까닥 맞장구 치는 봄날 속눈썹 끄트머리 아지랑이 얼굴이며 귓바퀴에 들리는 듯 그리운 목소리며 아직도 아직도 사랑합니다 꽃지면 잎이 돋듯 사랑진 그 자리에 우정을 키우며 이 세상 한 울타리 안에 이 하늘 한 지붕 밑에 먼 듯 가까운 듯 꽃으로 잎으로 우리는 결국 함께 살고 있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3.07

그대 어디에 가든 그대 무엇을 하든 낸시 수 크렌리치

그대는 내 사랑이 두려운 건가요 그러나 제발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 사랑은 그대를 구속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보다는 그대가 추위를 느낄 때 그대에게 온기를 전해 주고 그대가 외로움을 느낄 때 친구가 되어 드릴 거예요 내 사랑은 그대에게 미소를 전하여 그대의 나날들을 밝혀 줄 것이며 그대가 슬픔을 느낄 때는 그 마음을 헤아려 줄 거예요 내 사랑은 그대에게 아무런 의무를 지우지 않아요 내 사랑은 언제나 그대를 믿고 있으니까요 내 사랑은 그대에게 모든 것을 다 드리지요 오로지 그대가 어디에 가든 그대가 무엇을 하든 나를 그대 마음 속에 간직하여 주시기를 그리고 그대여 알아주시기를 그대가 돌아올 때 나 그대를 행복하게 해 주려 여기 이 자리에 남아 있을 것임을

카테고리 없음 2023.03.06

그런 이름. 정. 수경

오래오래 아껴두었던 매끄러운 꽃그림 편지지에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있었습니다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고 한 번도 켜보지 못한 양초에 불을 켜고 싶은 날이 있었습니다 자꾸 들으면 닳아버릴까 아껴서 듣던 노래를 하루종일 듣고 싶은 날이 있었습니다 나만 혼자 알고 싶던 비밀 같은 시를 소리내어 읽고 싶은 날이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그런 날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속으로만 조용히 불어보던 그런 이름이 있었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3.04

당신은 아름다워요. 김. 영승

당신은 아름다워요 - 김영승 방바닥에 털푸덕 앉아 양말을 신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크림을 바르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나 때문에 웃고 나 때문에 우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내 곁에 누워 곤히 잠든 당신, 아침엔 부산히 일어나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술 취해 쓰러진 나에게 다음 날 라면을 끓여주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욕하고 저주하고 떠난 당신은...... 당신은 아름다워요

카테고리 없음 2023.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