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31

결혼이라는것. U. 사퍼

혼자라는 것이 싫어 당신과 결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이 외로움을 없애줄 것이라고 상상할 만큼 어린애도 아닙니다. 숱한 애인들이, 부부들이 입버릇처럼 사랑한다고 되뇌지만 그 얼굴에선 언뜻언뜻 짙은 고독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혼자라는 것, 애인이 없다는 것을 우리 겁내지 맙시다. 결혼해야 한다는 주위의 압력도 크게 걱정하지 맙시다. 우린 무엇보다 결혼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뚜렷한 이유를, 그것도 아니라면 혼자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1.21

희망. 너에게 보내는 편지. 윤 영림

내가 너에게 희망이란 걸 걸때처럼 혹시 나에게도 희망을 거는 사람이 있을까 자나깨나 오로지 나 없이는 절대 살아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당신은 지루한 집착이라고 충고를 해대지만 희망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게 인생이고, 사는데는 욕망이 더 나았다며 절망에 익숙해져야 온전한 거더라고 누누이 얘기하지만... 지난날이 어찌 절망만 있었을까 그 많은 절망 앞에서도 초록의 피를 말아 하늘에 올린 희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로 존재할까?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올해도 나의 열두 달 속에 새 희망을 챙겨 넣는다 1월의 아침햇살이 무수히 부서지는 저 파장 속에 나의 꿈을 동봉하면서 이 글을 희망 너에게 부친다

카테고리 없음 2023.01.18

작은기도. S,E. 카서

눈멀어 더듬더듬 찾게 하지 마시고 맑은 비전으로 언제나 희망을 말할 수 있고 언제나 한결 유익한 기운을 더할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불길이 약할 때 얇은 옷 차려입은 꼬마들이 거기 앉아 여태껏 누려 본 적 없는 즐거움을 그려보는 때에는 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불게 하소서 가는 세월 동안에는 무심코 내가 한 번 던진 말이나 내가 얻으려고 애쓴 노력으로 인하여 가슴 아픈 일도 두 볼이 젖게 하는 일도 없게 하소서

카테고리 없음 2023.01.17

사랑하는 사람에게. 김. 재진

당신 만나러 가느라 서둘렀던 적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도착하지 않은 당신을 기다린 적 있습니다. 멀리서 온 편지 뜯듯 손가락 떨리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보여 여기예요, 여기예요, 손짓한 적 있습니다. 차츰 어둠이 어깨 위로 쌓였지만 오리라 믿었던 당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입니다. 어차피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오지 않듯 인생은 지킬 수 없는 약속 같을 뿐 사랑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실망 위로 또 다른 실망이 겹쳐지며 체념을 배웁니다. 잦은 실망과 때늦은 후회, 부서진 사랑 때문에 겪은 아픔 또한 아득해질 무렵 비로소 깨닫습니다. 왜 기다렸던 사람이 오지 않았는지, 갈망하면서도 왜 아무 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지, 사랑은 기다림만큼 더디 오는 ..

카테고리 없음 2023.01.16

사평역에서. 곽. 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

카테고리 없음 2023.01.15

갈대. 박. 두진

갈대가 날리는 노래다 별과 별에 가 닿아라. 지혜(智慧)는 가라앉아 뿌리 밑에 침묵(沈默)하고, 언어(言語)는 이슬 방울, 사상(思想)은 계절풍(季節風), 믿음은 업고(業苦), 사랑은 피흘림, 영원(永遠). ―너에의 손짓은 하얀 꽃 갈대꽃. 잎에는 피가 묻어, 스스로가 갈긴 칼에 선혈(鮮血)이 뛰어 흘러, 갈대가 부르짖는 갈대의 절규(絶叫)다. 해와 달 해와 달 뜬 하늘에 가 닿아라. 바람이 잠자는, 스스로 침묵(沈默)하면 갈대는 고독(孤獨).

카테고리 없음 2023.01.14

그대는 나의 전부 입니다.P. 네루다

당신은 해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빛과 모양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입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생명 속에는 나의 꿈이 살아 있습니다.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꿈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에 물든 내 영혼의 빛은 그대의 발 밑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오, 내 황혼의 노래를 거두는 사람이여, 내 외로운 꿈속 깊이 사무쳐 있는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석양이 지는 저녁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영혼은 그대의 슬픈 눈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대의 슬픈 눈빛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