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녘 해가 도로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안 그래도, 몸이 왜소한 내가 삶마저 야윈 것 같습니다 이양이면 석양답게, 내 인생 좀 풍성하게 그려 멋을 낼 일이지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다고 하면서 ‘이게 뭐냐’고 불평을 하였더니 알아, 안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살아있는 그 무엇이 시간을 이길 수 있느냐며 서산 마루에 반쯤 걸려 넋두리를 합니다 새 떼들 줄지어 모이고 흩어지면서 서산을 넘어간 뒤 해거름 그림 한 장 하얗게, 세상에 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