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 30

당신이날 사랑해야 한다면.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부디 "미소 때문에, 미모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그리고 또 내생각과 잘 어울리는 재치 있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그런 날엔 나에게 느긋한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저 여인을 사랑한다"고는 정말이지 말하지 마세요. 이러한 것들은 임이여! 그 자체가 변하거나 당신을 위해 변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그처럼 짜여진 사랑은 그처럼 풀려 버리기도 한답니다.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 사랑어린 연민으로도 날 사랑하진 마세요. 당신의 위안을 오래 받았던 사람은 울음을 잊게 되고 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날 사랑해 주세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당신이 사랑을 누리실 수 있도록, 사랑의 영원..

카테고리 없음 2023.06.10

자화상. 양민규

그 흔한 석고상이 사과상자 안에서 숨죽인 바람에게 불쑥 내민 한 마디 "흙 얼음 녹아 흐르는 봄빛 사유 토하라." 바르다가 멈춰버린 짓이긴 風化로 응결진 침묵이 울어버린 바윗살아 그린 듯 끊겨져 간 숨 저승길에 섰구나 근덩근덩 가는 실에 바람으로 달린 목숨 잎이지는 화두 앞에 목이 시린 나그네 물살이 바람을 따라 하류로만 흘러라

카테고리 없음 2023.06.09

그때가 그리운 것은. 이. 대로

하이얀 눈꽃송이와 보름달빛이 어우러진 눈부신 눈밭에서 당신과 나눈 사랑을 이제는 잊으셨나요?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어도 눈 내리는 날이면 이렇게 당신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잊지못한 채 오늘도 이곳을 찾아와 당신과 있었던 그날을 생각합니다 그때가 지금도 그리운 것은 당신과 나는 진실로 사랑했었다는 것을 서로가 서로를 원했다는 것을 이별이란 말은 서로가 허울좋은 가면이었다는 것을 행복을 빈다는 말은 서로를 달래주기 위한 빈말이었다는 것을 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아스라이 멀어져간 아름다운 우리들의 추억 오늘밤 당신이 곁에 없어도 그날을 못잊어 당신을 생각하며 눈밭을 걸어 보았습니다 눈 위 발자국은 당신이 되어 내 뒤를 자꾸만 자꾸만 따라왔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6.07

희망. 너에게 부친다.윤. 영림

내가 너에게 희망이란 걸 걸때처럼 혹시 나에게도 희망을 거는 사람이 있을까 자나깨나 오로지 나 없이는 절대 살아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당신은 지루한 집착이라고 충고를 해대지만 희망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게 인생이고, 사는데는 욕망이 더 나았다며 절망에 익숙해져야 온전한 거더라고 누누이 얘기하지만... 지난날이 어찌 절망만 있었을까 그 많은 절망 앞에서도 초록의 피를 말아 하늘에 올린 희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로 존재할까?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올해도 나의 열두 달 속에 새 희망을 챙겨 넣는다 1월의 아침햇살이 무수히 부서지는 저 파장 속에 나의 꿈을 동봉하면서 이 글을 희망 너에게 부친다

카테고리 없음 2023.06.06

물망초. 김. 남조

기억해 주어요 부디 날 기억해 주어요 나야 이대로 못잊는 연보라의 물망초지만 혹시는 날 잊으려 바라시면은 유순히 편안스레 잊어라도 주어요 나야 언제나 못잊는 꽃이름의 물망초지만 깜깜한 밤에 속 잎파리 피어나는 나무들의 기쁨 당신 그늘에 등불 없이 서 있어도 달밤 같은 위로 사람과 꽃이 영혼의 길을 트고 살았을 적엔 미소와 도취만이 큰 배 같던 걸 당신이 간 후 바람결에 내버린 꽃빛 연보라는 못잊어 넋을 우는 물망초지만 기억해 주어요 지금은 눈도 먼 물망초지만

카테고리 없음 2023.06.05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천. 양희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어떤 날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막무가내 올라간다 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 상상봉에 다다르면 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다 굽은 능선 위로 생각의 실마리들 날아다닌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바람소리 생각(生覺)한다는 건 생(生)을 깨닫는다는 것 생각하면 할수록 생(生)은 오리무중이니 생각이 깊을수록 생(生)은 첩첩산중이니 생각대로 쉬운 일은 세상에 없어 생각을 버려야 살 것 같은 날은 마음이 종일 벼랑으로 몰린다 생각을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 생각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 생각 때문에 밤새우고 생각 때문에 날이 밝는다 생각이 생각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카테고리 없음 2023.06.04

공존의이유. 조. 병화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우리의 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를 얘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내가 어디쯤에 간다는 것을 보일 수 없으며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만큼 사랑합시다. 우리 앞에 서글픈 그날이 오면 가벼운 눈 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카테고리 없음 2023.06.03

너를 만나고 싶다. 김. 재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둔 금 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거나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 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는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여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

카테고리 없음 202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