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 29

울음이타는. 가을강. 박. 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카테고리 없음 2023.08.31

나를열받게 하는것들. 안. 도현

나를 열 받게 하는 것들은, 후광과 거산의 싸움에서 내가 지지했던 후광의 패배가 아니라 입시비리며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이 아니라 대형 참사의 근본원인 규명이 아니라 전교조 탈퇴 확인란에 내 손으로 찍은 도장 빛깔이 아니라 미국이나 통일문제가 아니라 일간신문과 뉴스데스크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들 나를 열 받게 하는 것들은, 이를테면, 유경이가 색종이를 너무 헤프게 쓸 때, 옛날에는 종이가 얼마나 귀했던 줄 너 모르지? 이 한마디에 그만 샐쭉해져서 방문을 꽝 걸어 잠그고는 홀작 거리는데 그때 그만 기가 차서 나는 열을 받고 민석이란 놈이 후레쉬맨 비디오에 홀딱 빠져있을 때, 이제 그만 자자 내일 유치원 가야지 달래도 보고 으름장도 놓아 보지만 아 글쎄, 이 놈이 두 눈만 껌뻑이며 미동도 하지 않을 때 나는..

카테고리 없음 2023.08.30

고독에관한 간략한 정의. 노 혜경

공원길을 함께 걸었어요 나뭇잎의 색깔이 점점 엷어지면서 햇살이 우릴 쫓아왔죠 눈이 부시어 마주보았죠 이야기했죠 그대 눈 속의 이파리는 현실보다 환하다고 그댈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세상 모든 만물아 나 대신 이야기하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길은 끝나가고 문을 닫을 시간이 있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카테고리 없음 2023.08.28

가장 행복한 것은 무엇인가요. 문. 영

사랑은 재산을 소유하거나 물건을 갖는게 아니예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수록 근심만 늘어납니다. 사랑은 갖는 것이 아닙니다. 갖는다면 그것은 집착에 불과해요.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줄 수 없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갓난아이에게 엄마는 젖을 주는게 아니예요. 엄마는 사랑을 주고 있어요. 튼튼히 자라달라고 하는 엄마의 마음의 사랑 마음을 열어보세요. 누가 소유되고 누가 소유하겠어요? 줄 수 있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8.26

가끔식은 흔들려 보는거야. 박성철

가끔씩은 흔들려보는 거야 흐르는 눈물을 애써 막을 필요는 없어 그냥 내 슬픔을 보여주는 거야 자신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어 물이 고이면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작은 상심이 절망이 될 때까지 쌓아둘 필요는 없어 상심이 커져가 그것이 넘쳐날 땐 스스로 비울 수 있는 힘도 필요한 거야 삶이 흔들리는 건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다는 건 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증거니까 가끔씩은 흔들려보는 거야 하지만 허물어지면 안 돼 지금 내게 기쁨이 없다고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어 늦게 찾아온 기쁨은 그만큼 늦게 떠나가니까

카테고리 없음 2023.08.23

가을의시. 곽. 재구

오후 내내 나룻배를 타고 강기슭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당신이 너무 좋아하는 칡꽃 송이들이 푸른 강기슭을 따라 한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젖은 꿈처럼 수면 위에 잠기고 수면 위에 내려온 칡꽃들이 수심(水深) 한가운데서 부끄러운 옷을 벗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어가고 지천으로 흩날리는 꽃향기 속에서 내 작은 나룻배는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8.21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 노. 혜경

공원길을 함께 걸었어요 나뭇잎의 색깔이 점점 엷어지면서 햇살이 우릴 쫓아왔죠 눈이 부시어 마주보았죠 이야기했죠 그대 눈 속의 이파리는 현실보다 환하다고 그댈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세상 모든 만물아 나 대신 이야기하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길은 끝나가고 문을 닫을 시간이 있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카테고리 없음 2023.08.20